아빠는 시니컬한데 귀여운 성격이다. 말로는 재미 하나도 없다고 하시면서 그 누구보다 제일 재밌게 즐기고 별로 안예쁘다면서 사진찍어 고이 간직하시는 소위 츤데레같은 성격.
내가 작년부터 산행을 즐기기 시작하자 어느 산을 가든 동네 뒷산같은델 간다고 산도 아니라고 놀려서 내가 언제 한번 큰맘먹고 힘든산 아빠랑 한번 올라야겠다고 다짐을 한적이 있다.
최근 주변 지인들이 명지산 산행을 다녀왔는데 힘들었다는 글을 보고 아 여기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 나이대에 너무 긴 산은 힘들 것 같고, 적당히 길면서 쉽지 않은 산길이라고 하니 아빠의 난이도에 딱 적당할 것 같은 느낌. 코스를 보여주면서 아빠한테 같이 산행을 가자고 제안했고 아빠는 바로 ok하셨다. 그렇게 시작된 산행,
명지산
높이 1,252 m이다. 1991년 9월 30일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광주산맥에 딸린 산으로 경기도에서는 화악산(華岳山:1,468m) 다음으로 높고 주위에 남봉(1,250m)·강씨봉(830m)·승천봉(974m) 등이 솟아 있다.
명지산은 경기도에서 두번째로 높은 산이자 블랙야크 100대명산 중 하나로 바로 옆에 붙은 연인산과 함께 인증을 많이들 하기로 유명하다.
그렇지만 연인산과 함께 오르게 되면 장거리로 난이도가 상당히 높아져 힘들 것 같아 다음으로 기약하고 명지산만 오르기로 했다.
코스는 트랭글 기준 가장 많이 가는 익근리 주차장 출발 원점회귀 코스로 다녀왔다.
산행 코스:
익근리 주차장-승천사-명지1봉-명지2봉-명지폭포-익근리 주차장 원점회귀(약 12.4km)
산행 시간:
약 6시간 30분(휴식시간 포함)
난이도: 중
주차장 무료
입장료 없음
쉬는시간 포함하여 산행시간은 총 6시간 30분이 걸렸다.
원래 승천사를 지나가는 입장료가 있었다가 없어졌다고 한다.
익근리 주차장에 차를 세우면 바로 앞에 깔끔하게 정비를 잘 해놓은 화장실이 있고 승천사 내부에도 공중화장실이 있다. 화장실은 주차장 화장실이 더 깔끔했고 승천사 화장실이 마지막 화장실이다.
산을 조금 오르다보면 승천사가 나오고, 사대천왕 문을 지나면 멀리 절과 불상이 보인다.
이 날이 우연히 부처님 오신날이었다(29일), 그래서 아빠와 함께 불상 앞에서 감사와 소원의 기도를 드리고 경건한 마음으로 지나갔다.
산을 오르다보면 계곡이 옆으로 쭉 이어져있었다. 산길 초입은 꽤 오랫동안 아스팔트 도로였는데, 계곡이 옆에 있어 다행히 지루하지 않았다.
산행 하는동안 본 꽃들, 아빠가 꽃이 예쁘다며 사진을 좀 찍으라고 하셨다. 휴대폰 꺼내기 귀찮으시다고 나보고 좀 찍으라고 해서 말 잘듣는 착한 딸은 열심히 꺼내 찍었다. ㅋㅋㅋ
사진엔 없지만 다람쥐도 정말 많았는데 이날 거의 평생 볼 다람쥐 명지산에서 다 봤다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이 봤다.
가평은 잣으로 유명하고 명지산에도 잣나무가 참 많았는데, 다람쥐 입장에선 먹을게 천지인 명지산이니 세대수가 높을만도 하다.
가는 길에는 개금나무도 있었는데, 아빠가 열매가 흰색이고 까서 먹으면 마카다미아 비슷한 맛이 난다고 했다. 그럼 견과류 아냐? 하고 물으니 그런것도 같다고 하셔서 찾아봤는데 이게 알고보니 헤이즐넛이었다!
헤이즐넛을 개암나무라고 부르고, 또 방언이 깨금나무라고 한다. 영어를 먼저 접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 어릴 때 개암나무라는 단어를 종종 들은 기억이 난다. 개암나무가 헤이즐넛이었다니…! 아빠랑 산행했기 때문에 알 수 있는 재밌는 정보들을 알아서 신기하고 즐거웠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며 걷고 걷다보니 3시간여만에 명지 1봉에 도착했다.
이날은 아쉽게도 비가 점점 오더니 우리가 정상 언저리에 도착했을 땐 꽤 빗줄기가 거세어지고 있었기에 정상에서 바라보는 뷰는 물안개 뿐이었다.
그래도 물안개 그 자체로도 매력이 있는지라 그 느낌을 좋아해서 우중산행도 한다는데, 아빠와의 첫 산행이 우중산행이어서 덕분에 예쁜 물안개를 볼 수도 있었다🤗
명지 1봉 정상에서 2봉으로 넘어갈 때 이런 철쭉 꽃이 많이 보였다. 아빠가 예쁘다고 찍어보라고 해서 말 잘듣는 큰딸은 또 카메라 주섬주섬 꺼내서 열심히 찍었다. ㅋㅋ
내려올 때는 비가 많이 내려서 조심조심 내려오다보니 시간이 올라갔던 그만큼 똑같이 걸렸다. 한참을 집중해서 내려오다보니 명지 폭포에 다다랐는데, 처음엔 폭포처럼 보이는게 명지 폭포인지 몰라서 그냥 계곡인가보다 했다가 아빠가 명지 폭포가 맞는 것 같다며 멈춰서서 멀리서 구경했다. 비가 많이 오고 있어서 다가가지는 않고 멀리서 바라봤지만, 그래도 명지 폭포를 보고 왔다!
그렇게 다시 산행 마무리를 하며 내려가는데 버섯이 곳곳에 보였다. 아빠가 비가 오고 나면 습해지면서 버섯이 살기 좋은 환경이 되서 삼십분 만에도 버섯이 크게 자란다고 한다. 아빠가 어릴때는 그래서 산에 비가 내리면 다음날 새벽같이 일어나 누가 먼저 채갈 새라 얼른 산에 올라서 버섯을 따와 국에 넣고 끓여 먹었다고 한다ㅎㅎ
아빠의 어린시절 이야기를 들으며 도란도란 가다보니 금방 원점이었던 익근리 주차장에 도착했다. 가는 길에 멀리 산 너머로 물안개가 깔린 것이 아름다워서 사진으로 담고 눈에도 한 풍경 담고 갔다.
아름다운 산과 물안개의 풍경
마침내 명지산 산행이 끝났다. 아빠에게 산이 어땠냐고 물으니 쪼금 산같은 산 올랐네, 하셨다 ㅋㅋ
오르면서 아빠 다리에 쥐 오른건 안비밀😏
그래도 딸이랑 둘이 우중산행도 해보고 좋네 하시는 걸 보고 종종 또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도 고마워요 아빠.
산행이 끝나고 시장한 배를 채우러 따듯한 국물이 있는 곳으로 갔다. 만두 전골을 파는 곳이었는데 국물이 따듯해서 그런지 맛있게 먹었다 ☺️
나는 맛있게 먹었는데 아빠는 평소 삼삼하게 드셔서 그런지 조금 짜다고 하셨다. 그래도 힘들었던 산행길을 마치고 나서 그런지 따듯한 국물이 들어오니 속이 든든하고 좋았다.
백둔리 인천집 위치
개운하게 밥먹고 안전 귀가로 마무리, 명지산 산행기 끝.
아빠와의 즐거운 첫 산행이었다. 다음 산행은 어디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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